좋은시 한 편

매포역 - 전형철

버미96 2021. 3. 29. 21:24

매포역 / 전형철
        
        갈꽃들 올 찬 솜이불 되어
        금강을 보듬는다
        눈이 맑은 새 한 마리, 어딘가
        둥지 트는 소리 수면 위를 난다
        가을 간이역 언저리로 안개를 토해낸 강물은
        목이 좁은 여울에서 긴 여행의 피로로 쿨럭댄다        
        강 건너 산에 업힌 초가 몇 채는 벌써
        포대기에 싸여 잠들고 있다
        불빛 두어 개가 떨리고
        섬돌 위에 가지런한 신발들이
        저희끼리 얼굴을 부빈다
        새벽의 끄트머리, 강물은 또 가을별처럼
        살얼음이 박히고
        작은 둠벙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떠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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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찾은 맘에 드는 시. 특히나 안개나 강물이 물보라 치며 흐르는 모습, 산허리에 자리잡은 초가의 풍경, 가을별같이 투명히 빛나는 살얼음을 너무나 친근한 언어로 풀어낸 시인의 발상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참고로 '둠벙'은 웅덩이의 충청도 방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