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윤성택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윤성택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지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었던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억을 엎지르는 동안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내 안 실뿌리처럼
추억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흙을 모아 채워넣고
앞으로는 엎지르지 않겠노라고
손으로 꾹꾹 눌러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꽃잎은 말없이 흔들렸습니다
위태하게 볕 좋은 옥상으로
너를 옮기지 않겠다고
원래 자리가 그대 자리였노라고
물을 뿌리며 꽃잎을 닦아내었습니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 시집 《리트머스》(문학동네) 中
예전에도 올린 적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느낌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 다시 올려본다.
근래의 나는 대부분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들춰보며 그것이 기쁨이든 가슴아린 기억이든 되돌아 보고 그 안에서 감상의 나래를 펼쳐내는 것이 상당히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비단 과거의 연인에 대한 기억에 한해서 뿐 만 아니라 친구들, 가족들과의 기억들, 학교에서, 사회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에 이르기까지내 안 깊은 곳 어딘가에는 언제든 내게 기억의 싹을 틔워줄 수 있는 뿌리가 고이 잠자고 있을 터이다. 보통의 내가 아는 사람들은 기억이 뭍어있는 것들을 잘 버리지 못한다. 누군가와의 정이 오고갔던 흔적, 아팠던 기억, 애틋한 감정들이 먼지만 소복이 쌓인채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채 잠자고 있겠지만 언젠가 먼지 한번 후 불어주면 날아가는 먼지와 함께 튀어나오는 기침소리처럼 툭 하고 내 안에서 나와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 휩싸이게 할 그것들 말이다. 그리고 가끔은 내게 그런 기억들을 안겨준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너무나 오랜시간 말뿐인 생각으로만 그리워하던 그 실체들이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아직도 예전 그대로 일지.. 그러면서도 쉬이 확인해 보지 못하는 이유가 변해있을 그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뻔한 거짓말이다. 그저 귀찮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났을 때나 소식을 접했을 때 그 오랜 공백을 메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여전히 그렇게 어딘가에 널부러져 있던 기억들을 하나 버림없이 모아두고 기억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그저 추억하는 것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환상의 시간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뭐랄까 살아가면서 그리워하는 이, 궁금해 하는 이 하나 없이 사는 것은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나에게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들..